패션업계에 있어서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기존 예술가들의 팬을 흡수함은 물론 고유의 예술적인 컬러를 브랜드의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에 대한 가격결정(pricing)은 생산비, 시장가격, 경쟁, 시장상황, 품질,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로 결정된다. 최근 패션업계 전반에는 10만원 이하의 초저가 정장이나 기존 수십~수백만원대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가성비 패딩’ 등 가성비 트렌드와 가치소비 트렌드가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가격결정에서 생산비를 낮추면서 품질을 최대한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패션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소비 트렌드에 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제품의 가격에 품질이나 생산비 이외의 요소, 즉 브랜드 가치(Brand Value)가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이름값’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는 브랜드의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실제 사용가치보다 높게 평가할 수 있게 만들거나 신뢰를 줄 수 있는 무형의 자산으로, 브랜드의 지명도만으로 현재나 미래에 거둘 수 있는 이익을 뜻한다.

CBS머니워치가 영국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의 자료를 이용 보도한 ‘브랜드 가치 100대 기업’ 순위에 따르면 ‘애플’의 경우 1840억 달러(약 200조원)의 브랜드가치를 기록하며 지난해 기업 브랜드 이미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제품을 넘어 애플이 가진 혁신과 인문학,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가 브랜드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주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그 어떤 주제보다 기업경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광고 연구가 래리 라이트(Larry Light)는 “마케팅 전쟁은 브랜드 전쟁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치열한 브랜드 전쟁을 통해 살아남은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실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브랜드 가치에 크게 좌우되는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최근 가성비 트렌드에 의해 기존 고가 정책을 무분별하게 시행하기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해당 제품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개방되는 요즘 소비자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실속 있는 소비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럭셔리 브랜드들은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 역사와 전통을 넘어 제3의 가치, 즉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예술적 가치부여를 시도하고 있다.

럭셔리, 예술과 융합하다

럭셔리 브랜드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손쉽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아티스트가 지닌 고유의 창조성을 통해 브랜드 제품에 예술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 상실 없이 고정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더욱 확장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럭셔리 브랜드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이제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다.

지난 2012년 ‘디올’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안젤름 라일레에게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겼으며, 라일레는 카무플라주 패턴을 통해 독특한 콜렉션으로 화답한 바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과 협업을 통해 파스텔 톤의 백 위에 워홀의 초창기 작업인 슈즈 일러스트를 선보였으며 지난해에는 전 세계 10명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디올 레이디 아트#2’를 선보이기도 했다.

‘구찌’는 지난 9월 수석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2015년부터 인연이 있는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 언스킬드 워커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캡슐 콜렉션을 발표했다. 언스킬드 워커의 인스타그램 작품을 탐구한 것을 인연으로 미켈레는 상하이 민생 미술관에서 열린 구찌의 전시회에 참가 초대를 권유하기도 했다. 독학으로 48세부터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언스킬드 워커는 콜렉션에서 구찌의 백과 스니커즈, 액세서리 등에 자신의 작품을 강조했다.

예술과 가장 활발하게 교류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꼽히는 ‘루이비통’은 지난 2001년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리처드 프린스와 구사마 야요이 등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들과 함께한 콜렉션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미국의 미술가인 제프 쿤스와 협업을 통해 다 빈치, 루벤스, 반 고흐 등의 작품을 가방과 액세서리에 새겨 넣는 시도를 통해 진행하기도 했다.

‘프라다’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과 예술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3년 ‘죽음의 예술가’로 불리는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 허스트와 셰이카 알 마야사 카타르 박물관 대표와 협업해 ‘프라다 오아시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데미안 허스트는 플렉시글라스로 제작한 곤충을 가방 전면에 장식했으며 골드 도금의 단단한 프레임을 더했다. 3가지 색상으로 20개 한정된 이 제품의 수익금은 비영리단체에 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리트 패션, 가장 강력한 문화 아이콘으로

그 동안 패션업계의 지향점은 우아함과 고상함으로 대변되는 예술의 경지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땅 위 대중들을 향하는 새로운 지향점, 즉 스트리트 패션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음악 장르인 힙합은 이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패션업계에서 마르지 않는 샘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컬쳐 브랜드의 경우 대개 가수와 DJ 등 패션과 다른 가치를 지닌 인플루언서들을 필요로 한다. 최근 패션업계가 스트리트 무드를 지향하며 힙합 트렌드를 등에 업은 래퍼들과의 협업이 잦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삼성연구소에서 발표한 ‘2017 패션산업 10대 이슈’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스트리트 패션은 애슬레저와 복고 패션으로 대표되는 헤리티지 스타일링의 확산에도 기여하며 그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을 가장 쉽게 받아들인 복종은 역시 캐주얼이다. 이는 캐주얼 브랜드가 그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문화를 등에 업고 컬쳐 브랜드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장 스트리트 패션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 콜렉션이었다. 과거 ‘캘빈클라인’의 속옷 광고에 자사 스티커를 붙여 안티 팝 문화를 각인시킨 슈프림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거쳐 복종의 경계와 고정관념을 허무는 스트리트 패션 특유의 정신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상징되던 유스컬처가 대중문화로 성장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성인문화에 대한 반발과 과거 1990년대에 대한 회귀 등 고정된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패션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유의 타탄 패턴과 트렌치 코트로 상징되는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1990년대 포스트 소비에트 시절 무드를 재해석하며 러시아 유스컬처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의 협업으로 기존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콜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샤 루브친스키의 2018 S/S 콜렉션에서 공개된 버버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은 트렌치코트와 해링턴 재킷, 체크 반소매 셔츠와 반바지 등 1990년대 영국의 ‘차브’ 풍으로 새롭게 해석된 8종의 남성복을 선보였다.

우아하거나, 혹은 전혀 새롭거나

국내 패션기업들 또한 자사 브랜드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다양한 협업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2017년 한해는 콜라보레이션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브랜드들이 협업 상품을 출시했다. 남성복 브랜드 ‘코모도’는 지난 9월 광고캠페인에 유명 아티스트 커티스 쿨릭을 선정했으며 12월에는 그를 주제로 한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했다. 커티스 쿨릭은 ‘러브 미(Love Me)’라는 단어를 독창적인 작품으로 표현해낸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다.

‘유니클로’는 창의적인 예술관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팝아티스트 ‘카우스’가 인기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를 고유의 스타일로 위트 있게 해석한 콜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카우스는 캐릭터의 눈을 X자로 표시하는 시그니처 스타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피너츠의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우드 스탁 등을 재해석했다. 컨템포러리 브랜드 ‘커스텀멜로우’는 신규빈, 남상철 두 미디어아트 작가로 구성된 ‘신남전기’와 함께 공간을 활용한 프로젝트 ‘인스펙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익스펙터는 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고객들이 직접 보고 반응하며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

스트리트 무드를 품은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해 힙합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포츠 브랜드 ‘푸마’는 자사 아이템인 ‘스웨이드’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패션 매거진 맵스와 함께 국내 힙합 뮤지션인 크러쉬와 치타, 얀키, 식 케이의 스트리트 룩을 선보였다. 이들 뮤지션들은 50주년을 맞아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시된 ‘스웨이드 비보이’를 착용한 채 거친 공사장이나 지하철 정거장 등 레트로 풍의 거리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리바이스’ 또한 자사의 ‘트러커 재킷’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칼리 클로스, 미로슬라바 두마, 슬론지 놀리세 등 50인의 글로벌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트러커 재킷을 전시했다. 한국에서는 지드래곤, 씨엘, 혁오, 모델 아이린이 참여했는데 특히 힙합 아티스트인 지드래곤은 초기 힙합 세대에서 인기를 끈 컬러풀하게 커스터마이징된 데님 베스트와 재킷을 오마주한 특색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패션업계는 예술과 문화를 넘어 쉬이 상상하기 힘든 이종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모자 전문 브랜드 ‘햇츠온’에서는 팔도의 라면 왕뚜껑과 함께 왕뚜껑 특유의 강렬함을 담은 레드 컬러를 메인으로 햇츠온 고유의 스트리트 무드를 녹여낸 특별한 콜렉션을 출시했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는 마운틴듀와 협업한 ‘휠라X마운틴듀 콜라보레이션 콜렉션’을 출시해 자사의 레트로 무드와 휠라 헤리티지에 마운틴듀가 가진 역동적인 이미지를 담아냈다. 한편 휠라는 지난 4월 펩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작으로 메로나, 코레일까지 업종을 넘어선 협업을 선보이고 있다.